본문 바로가기

쌍둥이 아빠의 육아이야기/둥이 아빠 일상

왕과나 그리고 폐비윤씨와 어우동

728x90


4대 - 세종 ( 1418.8 - 1450.2 )
5대 - 문종 ( 1450.2 - 1452.5 )
6대 - 단종 ( 1452.5 - 1455.윤6월 )
7대 - 세조 ( 1455.윤6월 - 1468.9 )
8대 - 예종 ( 1468.9 - 1469.11 )
9대 - 성종 ( 1469.11 - 1494.12 )
10대 - 연산군 ( 1494.12 - 1506.9 )

22대  정조 ( 1777 ~ 1800 ) 현재 드라마로 방영중인   M드라마 이산...

성종의 여자는  중전3명에 후궁만 16명인건 역사적으로 밝혀진 사실이긴 하지만.
일단 폐비윤씨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폐비 윤씨는
1474년 왕후(중전) 승격  - 성종 7년 7월
1476년 연산군을 생산
1479년에 폐출되어
3년후인 1482년에 사망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성종에게는 윤씨가 첫사랑이었겠지만, 나이가 든 성종으로서는 더 아름다운 여자를 찾을 수 있고,  궁중의 모든 궁녀가 왕의 여자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은 당연한 사실.

이 시기에 성종은 어우동(어울우동)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성종은 어우동을 좋아는 하지만, 어우동의 경우 왕실에 있는 모든 남자들과 성관계를 하게 됩니다.
어우동과 관계를 하지 않은 관리들이 없을 정도로 어우동은 많은 화제거리가 됩니다.

어우동의 역사에 대해서  제가 쓴 블로그를 찾아보시면 어떻게 죽었는지 상세히 나옵니다.

폐비윤씨의 폐출되는 계기 는 다음과 같습니다.
폐출되는 계기는 그러던 어느 날 성종이 모처럼 왕비 윤씨의 처소에 들었고,
두 부부 사이에 그간 쌓인 감정으로 인해 윤씨의 손톱이 왕의 얼굴에 닿았으며,
(쉽게 말하면 왕의 얼굴에 싸대기를 쳤다고 해도 되겠지요...)
폐비 윤씨는 어우동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썩 좋지 않게 생각을 하겠지요?
그 때 약간의 상처가 생긴 것이다. 인수대비는 궁중의 어른으로서 윤씨를 엄하게
문책할 것을 강요했고, 인수대비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조정대신들도 동조하여
결국 윤씨는 폐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목숨까지는 빼앗지 않았는데,  인수대비는 윤씨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꼬투리로 삼아 사약을 내리도록 추진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그 때가 성종 13년 8월 16일이었다.

세자인 연산군의 왕이 될때까지 윤씨가 살아있으면 안되는 일이기에
아예 화근을 잘라버리기 위해 폐비 윤씨를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연산군은 1476년부터 1506년까지 살았으며 , 어머니 윤씨가 폐비가 된 것은 4세인 1479년이었고,폐비 윤씨가 사사된 것은 9세인 1484년이었으며,
연산군이 즉위한 것은 19세인 1494년이었고,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할머니인 인수대비의 머리를 받아죽였으며,
그에 동조한 많은 신하들을 죽였다. 그 때 윤필상, 김굉필 등 수십 명이 죽었고,
이미 죽은 한명회는 부관참시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김처선도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버지의 후궁인 정씨와 엄씨를 죽인 것이 39세인 1504년이었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것은 41세인 1506년이었으며,
폐위되던 해에 유배지인 강화도에서 병으로 죽었다.

728x90